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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항공중심도시 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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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0만 비전

금산면

연혁

  • 조선시대에 도양목장(道陽牧場)에 속한 속장(屬長)의 하나로 절이도(折爾島)라 하였다. 그 후 강진군(康津郡)에 편입되었다가 광무(光武) 원년(1897년)에 돌산군(突山郡) 관하의 금산면(일명 居金)으로 개칭되었으며 일제때인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에 고흥군 금산면이 되었다.
  • 속전(俗傳)에는 큰 금맥(金脈)이 있어 거금도(居金島)라 부른다고 하며 조선 중기의 문헌에는 속칭 “거억금도(巨億今島)”라고 기록되어 왔다. 적대봉의 산록에 형성된 마을들 중 진막금(眞幕金), 전막금(箭幕金), 욱금(旭金), 청석금(靑石金), 고라금(古羅金) 등 “ㄱ(받침)+금”으로 된 지명이 많아 거금도(거억금)와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지명유래

금산면 지명유래-대흥리(大興里),어전리(於田里),신전리(新田里),신촌리(新村里),석정리(石井里),신평리(新平里),오천리(五泉里)
대흥리
(大興里)
대흥리
(大興里)
본래 돌산군 금산면의 지역으로 대흥(大興)일부와 신흥(新興) 두 마을을 합하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대흥마을의 이름을 따서 고흥군 금산면의 대흥리로 하였다. 대흥이라는 명칭은 「큰망내」라 부르는 대망천(大網川) 마을과 「작은망내」라 부르는 신흥(新興)마을의 앞자와 뒤자를 따서 대흥(大興)이라 한다. 면소재지로서 거금도의 서쪽 만(灣) 안에 위치하고 있다.
상하촌
(上下村)
본 마을은 뒷산인 용두산에서 발원하여 내려온 하천이 마을 중심을 통하여 흐르고 있으며 주위의 산이 큰 그물과 같이 감싸고 있어 큰망내라 부르다가 한자를 음차하여 대망천(大網川)으로 개명하였으나 1937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상하촌으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촌
(中村)
본래는 대망천(큰망내)마을에 속하였다가 큰망내 중간 들판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중촌(中村)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흥
(新興)
본래는 대망천(큰망내) 마을의 일부였으나 마을이 커짐에 따라 큰망내에서 분리되어 새로 일어나 번창한다는 뜻으로 신흥(新興)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용동
(龍洞)
본 마을은 원래 대흥리 중촌마을의 1개 반(班)으로 편성되어 왔으며 예부터 마을 이름을 “둔병치(屯兵峙)” 및 '둔병'(屯兵)으로 불렸는데, 조선시대 지방에 주둔한 병사와 지방조달 식량관리의 일환으로 둔전을 두었으며, 지금의 어전(동촌, 평지, 연소)일원이 둔전지대였다라고 부르다가 1962년 후에 용동(龍洞)으로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어전리
(於田里)
어전리
(於田里)
본래 돌산군 금산면의 지역으로 진장(眞藏)과 어전(於田)일부 및 대흥(大興)일부를 합하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 고흥군 금산면의 어전리로 하였다. 어전이라는 지명은 본래 고개밑에 마을이 있어「늘앗」또는「고기밭」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어전(於田)이라 한다.
동촌
(洞村)
본 마을은 어전리(於田里)에 속하며 마을이 용두봉(龍頭奉) 동북 골짜기에 위치한다하여 “골몰(谷村)”이라 불리어 오다가 1907년에 마을 이름을 등촌(洞村)이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평지
(平地)
어전(於田)이란 지명은 본시 고개밑에 마을이라하여 “늘앗” 또는 “고개밭”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어전(於田)이라 표시(表示)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어전리(於田里) 동쪽에 있는 “늘앗터”를 평지마을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연소
(蓮沼)
본 마을은 어전리에 속하며 마을 앞에 연못이 있고 연꽃이 많아 연소(蓮沼) 또는 한때 “연못금”이라 불러왔고, 또 옛날 선배들은 마을르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일명 필봉을 옹하고 있는 마을 지형이 마치 반달모양으로 생겨 반월(半月)이라 칭하기도 했으나 1939년 리동행정 구역개편에 따라 연소(蓮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옥룡
(玉龍)
병자호란 때 이곳에 관군(官軍)이 퇴군(退軍)하면서 잠시 진(陳)을 치고 막(幕)을 쳤다하여 진막금(陳幕金)이라 불렀다하며 또 마을 앞에 옥녀봉(玉女奉)이 있고 옆에 용두봉(龍頭峰)이 있어 두 봉우리의 첫 자를 따서 옥룡(玉龍)이라 하였는데 속칭 진막금(眞幕金)이라고 불렀으며, 그 후 1939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옥룡마을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익금
(益金)
바다에서 해가 뜨면 마을 앞 모래에 햇빛이 반사되어 금빛이 나므로 옥금(旭金)이라 불렀으며 부촌(富村)이 될 것 이라고 하여 금을 더한다는 뜻으로 익금(益金)마을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금장
(金藏)
옛날부터 이곳에 금이 많이 묻혀 있다는 전설에 의하여 금장(金藏) 또는 진장(眞藏)이라 불리어 왔으며 1958년 미국 OAC 원조에 의하여 난민정착지 마을로 형성되었다.
상동
(上洞)
1974년에 난민 정착지 금장마을에 편입되었다가 1975년 금장의 위쪽에 위치한다하여 상동(上洞)마을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전리
(新田里)
신전리
(新田里)
본래 돌산군 금산면 어전(於田)리에 속해 있다가 1914년의 폐합 시 신전리(新田里)로 분구 되었으며, 이 지역의 해안에 방조제를 쌓아 전답이 많이 이루어 졌음으로 이명(異名)을 신전(新田)리라 하였다.
궁전
(弓前)
원래 궁전이란 마을 이름은 마을 뒷산 산등(山嶝)이 마치 활과 같은 형국(形局)이므로 활(弓)로 표시(表示)했고 앞바다 가운데에 있는 딴대섬(竹島)을 활 앞에 있다하여 궁전이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두
(牛頭)
마을의 지형(地形)이 소의 머리와 같이 생겼으므로 쇠머리라고 부르다가 한자를 훈차(訓借)하여 우두(牛頭)라 불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연홍
(連洪)
원래 돌산현에 속하였으나 18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흥군 금산면(서북쪽에 위치)에 속하게 되었다. 300여 년 전 밀양박씨가 처음 입도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넓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연(鳶)과 같다 하여 연홍도(鳶洪島)라 부르다가 일제강점기에 거금도와 맥이 이어져 있다 하여 연 ‘연(鳶)’자를 이을 ‘연(連)’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섬의 지형이 말의 형상과 같다 하여 마도(馬島)라 불렀다는 설도 함께 전해진다. 원적(元籍)은 신전리로 되었고, 1928년에 마도를 연홍으로 개칭하였다
신촌리
(新村里)
신촌리
(新村里)
본래 돌산군 금산면의 지역으로 신촌(新村)마을과 금진(錦津)마을을 합하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 고흥군 금산면의 신촌리라 하였다.
신양
(新陽)
마을의 지형이 마치 고기 잡는 그물처럼 생겼다하여 “발막금 또는 전막금(箭幕金)”이라 부르다가 새로 양지 바른 곳에 생긴 마을이란 뜻으로 신양(新陽)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배천
(培泉)
마을의 지형이 마치 좌우로 청룡, 백호 등이 감싸 그 가운데 지맥에서 나는 우물(샘물)이 좋아서 배천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촌
(新村)
1959년에 신촌, 중동, 상동 3개 마을로 분리되었으나 1962년도에 통합 단일 마을이 되었다. 그 후 1987년도에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시 분동되어 신촌마을로 독립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동
(中洞)
원래 신촌에 속한 마을로서 내동, 중동, 상동으로 분리되었으며 고개를 넘어 마을 중간에 위치한다 하여 “목넘” 또는 중동(中洞)이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동
(上洞)
원래 신촌마을에 속하며 1987년 7월 1일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촌, 중동, 상동으로 분리됨으로서 웃동네라 하여 상동(上洞)마을로 독립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금진
(錦津)
1600년경에는 거금도(居金島) “조금나루”라 하였으나 1884년에는 돌산군 거금도 소진(召津)으로 개칭하였고 그 후 마을이 북쪽 해안에 위치하여 조금 때에는 암석이 노출되므로 조금너리라 하였는데 예부터 이곳에 나루터가 있어 나루진(津)자를 붙여 금진(錦津)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금
(新錦)
본 마을은 원래 금진에 속하였으며 산모퉁이를 끼고 도는 곳에 위치한다하여 “샛감도리”라 부르다가 새로 생긴 마을이므로 새신(新)자를 붙여 신금(新錦)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석정리
(石井里)
석정리
(石井里)
본래 돌산군 금산면의 지역으로 석교(石橋), 동정(桐井) 두 마을을 합하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 두 마을의 앞․뒷자를 따서 고흥군 금산면의 석정리라 하였다. 금산면의 북부 중앙에 위치한다.
석정
(石井)
본래 석교와 동정 두 마을을 합하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 석정리로 하였으나 그 후 1947년 리동행정구역 개편 시 석정마을로 독립되었으며 마을이 골짜기 안에 있어 한때는 “골안”이라 불렀고 암석위로 흐르는 물이 거울같이 맑다는 뜻에서 석정(石井)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원래는 마을 명을 “참우골”이라 불리어 왔다고 한다.
석교
(石橋)
원래 마을 명을 “참우골” 돌다리라 불렀다 한다. 전하는 말로는 전씨(田氏)장사와 박씨(朴氏)장사 두 분이 태어나서 개목장지 하천에 큰 돌다리를 놓고 힘자랑하는데 실패하여 두 분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참우골은 우물물이 참말로 좋다하여 부르게 되었으며 돌다리가 “똘똘이”로 변했으며 지금 팔경 중 일경인 석교낙안(石橋落雁)으로서 바다에 기러기가 앉는 풍경을 자랑한 것이라 한다. 지금은 돌석(石)과 다리교(橋)자를 합쳐 석교라 부르고 있다.
일정
(日亭)
옛날 마을에 우물이 하나 뿐 이어서 일정(一井)이라 부르다가 나중에 마을에 우물이 많이 생겼으며 마을 앞에 수 백 년 된 정자나무가 있어 정자나무를 중심으로 해와 같이 밝고 둥글게 살자는 뜻으로 일정(日井)으로 바꾸었다가 정자정(亭)자를 붙여 일정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치
(城峙)
본 마을은 도양목관(道陽牧官)에 속한 목장성(牧場城)의 동쪽에 있으므로 한때 마을 이름을 성동(城東)이 목장성의 동쪽에 있으므로 마을 이름을 성동이라 부르다가 성(城) 고개 밑에 위치한다 하여 성치(城峙)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정
(新井)
본 마을은 동정에 속해 있었으나 1938년 동정에서 분동하면서 한때 마을 뒷산에 당산(堂山)이 있어 “당동”이라 불러오다가 섬에서는 우물을 중시하고 새로 생긴 우물이 있어 신정(新井)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정
(桐井)
원래는 산골 안에 금(金)이 매장된 마을이 있어 고라금(古羅金)이라 부르다가 마을 앞 연못가에 오동나무가 있고 그 밑에 있는 바위에 솟는 샘이 있다하여 동정이라 불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동정, 신정, 성치가 한 마을 이었는데 인구가 증가됨에 따라 성치, 신정마을로 분리되었다.
신평리
(新平里)
신평리
(新平里)
본래 돌산군 금산면의 지역으로 월포(月浦), 신평(新平) 두 마을을 합하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 그전 신평 마을의 이름을 따서 고흥군 금산면의 신평리로 하였다. 금산면 동북단에 위치해 있다.
신평
(新平)
옛날 난리가 났을 때 마을 앞 해안에 큰 암석의 동굴이 있어 주민들이 무사히 피하였으므로 평산암(平山岩)이라 부르다가 마을의 평안(平安)을 비는 뜻으로 신평(新平)이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월포
(月浦)
마을 앞 포구가 반달형으로 생겨 “달개”라 부르다가 훈차(訓借)하여 월포라 하며 조선후기의 옛 지도에도 월포로 표기되어 있으며 마을 뒤의 고개를 “달갯재”라 하였는데 195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포(月浦)마을로 현재에 부르고 있다.
홍연
(紅蓮)
본 마을은 조선시대에 홍리(紅里)라고 부르고 또 적대봉 산록에 위치하여 마을 옆에 용(龍)이 누워 꿈틀거리는 모양처럼 생긴 횡용(橫龍) 등이라는 곳이 있어 한때 횡용(橫龍)으로 부르다가 1953년도에 홍수로 인하여 수십가옥이 유실된 후로 홍연(紅蓮)으로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약(約) 1890년까지에도 본 마을의 근처 마을은 설촌되지 못했다 한다.
남천
(南川)
연대는 미상(未詳)이나 옛날 “남산골”이라 부르다가 1956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을 뒤에 솟은 적대봉 골짜기에서 마을 앞 남쪽으로 하천이 흘러 바다에 들어가므로 마을 명을 남천(南川)이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명천
(明川)
적대봉 계곡으로부터 마을 앞을 흐르는 10리장천(里長川)이 있어 한때는 “앞내”[전천(前川)]를 암(暗)내로 발음(發音)하여 마을에 어두운 일들이 발생한다 하여 1956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 시 당시 암(暗)자를 명(明)자로 고쳐 명천이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천리
(五泉里)
오천리
(五泉里)
본래 돌산군 금산면의 오천리를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 고흥군 금산면 오천리로 하였다. 오류촌 이라고도 부른다.
동촌
(東村)
본래 이 마을에는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많아서 오류천(梧柳川)이라 불러오다가 195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촌(東村)과 서촌(西村)으로 분동되면서 마을 동쪽에 위치한다하여 동촌(東村)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촌
(西村)
동촌(東村) 마을과 같이 오천리(五泉里)에 속한 마을로서 1956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촌(西村)으로 분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석
(靑石)
마을 앞 바다가 퍼렇고 해안가에 있는 바위속에 금이 들어있는 푸른돌이라 하여 청석금(靑石金)이라 부르며 1947년 오천리 동촌(東村)마을에서 분동됨에 따라 마을 명을 靑石(청석)이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관리부서

    금산면

  • 연락처

    061-830-6512

  • 최종수정일

    2020-02-27 07:53

  • OPEN,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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