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 538년 백제 시대 : 도량부곡
- 1310년 고려시대 : 도양현 승격
- 1441년 세종 23년 본 군 7현은 흥양현으로 통합
- 1490년 10월 조선시대 : 녹도진성 축조 (성종 21년)
- 1759년, 영조 35년 : 도양면(흥양지 참조).
- 1895년 5월 1일 : 흥양현(7현)이 "흥양군"으로 개편
- 1896년 8월 4일 : 득량도 - 완도군소속, 소록도 - 돌산군 금산면소속, 시산도 - 돌산군 봉래면소속, 상하화도 - 돌산군 금산면 소속
- 1914년 3월 1일 : 흥양군 → 고흥군으로 명칭변경
- 한일합병이후 전라남도 흥양군에 府, 郡, 面 폐합
- 13개면으로 개편함
- 1914년 3월 1일 : 득량도 - 완도군에서 고흥군 도양면에 편입
- 1963년 1월 1일 : 소록리, 오마리 - 도양면에 편입
- 시산리 - 봉래면에서 풍양면에 편입
- 1972년 9월 27일 : 시산리 - 풍양면에서 출장소 설치
- 1973년 7월 1일 : 도양읍으로 승격
- 도양읍 도덕출장소 설치
- 1974년 4월 4일 : 소록출장소 설치
- 1983년 2월 15일 : 도덕면으로 승격 (도양읍 도덕출장소에서)
- 시산리 - 풍양면에서 도양읍으로 편입
- 상하화도 - 금산면에서 도양읍으로 편입
지명유래
장계리 (長溪里) |
신흥 (新興) |
마을이 호랑이 형국으로서 목마른 호랑이가 이곳에서 물을 마셨다하여 한때 “갈래수” 라고 불렀으며 1914년 지방행정구역 개편 당시 새로 생긴 마을로 번창할 것이라는 뜻에서 신흥(新興)이라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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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 (長流) |
마을 앞에 시냇물이 길게 흘러 장류(長流)라 하였으며 지와골에서 기와를 구워 이 마을에서 팔았다는 옹기점이 있어 한때는 “점골”이라 부르다가 1956년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유(長流)라 함. | |
장수 (長壽) |
마을지세가 거북이 꼬리 형국이라 하여 “장귀미”라고 부르며 또 옛날 이 마을에 자손이 귀하여 거북이처럼 오래 살면서 번영을 바라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장수(長壽)라 함. | |
관 리 (官 里) |
관상 (官上) |
본래 조선조까지 도양현의 현(縣) 치소였으며 장흥도호부에 속한 도양둔저 관목관이 주둔하였다하여 관리의 윗 마을이므로 웃동네(上里) 또는 관상(官上)이라 함. |
관중 (官中) |
원래 중리(中里)라 하다가 관리의 가운데 마을이므로 “간댓동네”또는 관중(官中)이라 불렀으며 관청이 위치할 터라 하여 벼슬 관(官)자에 마을 중심에 위치한다 하여 가운데 중(中)자를 붙여 관중(官中)이라 하였으며 이 마을은 옛날 도양현(道糧縣)의 현 치소로서 후에 도양면사무소가 위치한 곳으로 서기 1956년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중(官中)마을로 분리됨. | |
관하 (官下) |
원래 관청이 자리 잡은 곳이라 하여 관리라 불러왔으나 관청 아래쪽에 위치한다하여 하리(下里) 또는 “아랫동네”라 불리다가 한자를 음차하여 관하(官下)라 하였으며 1956년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하(官下)마을로 분리됨. | |
수동 (壽洞) |
마을 주민의 평안과 장수(長壽)를 바란다는 뜻에서 수동(壽洞)이라 불렀으며 한때 “상굴” 이라고도 불러오다가 1956년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동마을로 분리됨. | |
원동 (院洞) |
옛날 마을 근처에 관사의 행정관소인 원(院)이 있어 마을 이름을 “원공”이라 칭하여 오다가 1620년 광해군 때에 원동이라 함. | |
비선 (飛仙) |
마을 앞에 비봉산(飛鳳山)이 보이고 그 경치가 선경(仙境) 이라는 뜻에서 비선(飛仙)이라고 불렀다 하며, 원래는 마을에 비석(碑石)이 서 있어 “비석골”이라 불이어 오다가 그 후 비석동에서 신선이 날아간 곳이라 하여 비선(飛仙)이라 함. | |
용정리 (龍井里) |
상류 (上柳) |
장기산 아래 자리 잡고 옛날 이곳에 버드나무가 많아 그 버드나무가지에 꾀꼬리가 집을 지을 터라 하여 한때 유전(柳田)이라 불렀으며 그중 윗마을에 해당되므로 상유(上流) 또는 웃유전이라 이름하였다가 1943년 리동통폐합 개편에 따라 상류(上柳)라 함. |
유전 (柳田) |
본 마을은 하류(下柳)에 해당하므로 “아랫유전” 이라 불리어 오다가 마을이 번성하고 규모가 확대되자 1943년 리동행정구역 폐합 시 상·하류(上·下柳)로 분동된 후 마을 이름을 유전(柳田)이라 함. | |
안평 (安坪) |
마을에 용수산이 있고 마을 뒷산에 큰 무덤이 있다하여 “대분동”이라 불리다가 1965년 마을 들판을 수리 안전답으로 개답한 후 부터 마을의 평안을 기리는 뜻에서 안평(安坪)이라 함. | |
차경 (且耕) |
조선시대에 녹도만호가 주둔한 인접마을이므로 차경(且耕)이라고 불렀으며 지형이 또아리(또가리) 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 또가리를 훈차하여 갈고 또 갈고 하여 비옥한 전답을 일구라는 의미로 차경(且耕)이라 함. | |
장길 (壯吉) |
1970년에 녹동항 부두 근로자 30여명을 규합한 박장길씨가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비봉산하 서쪽하능 서쪽 야산택지에 주택 30동을 건립함으로써 마을이 형성됐다고 하여 자신의 이름을 따 장길(壯吉)이라 함. | |
용정 (龍井) |
본 마을은 장기산 산맥의 남쪽에 용수산이 있어 마치 길게 누워있는 용의 품안에 사시절 맑은 물이 솟고 있다하여 용龍자와 샘井자를 합쳐 용정(龍井)이라 함. | |
남암 (南岩) |
장기산 남쪽에 있는 마을로 남바위라는 바위가 있어 남암이라 하였는데 마을 뒷산 중턱에 암자가 있고 그 남쪽에 마을이 있다하여 남암(南菴)이라 부르다가 조선후기 정조 때 암자(庵子)가 없어진 후 남암(南岩)이라 불림. | |
장예 (長禮) |
잠두 북쪽에 위치하여 후미진(기미)갯가에 있고 앞에 긴 여가 있어 “장구미”또는 장여라 불리다가 예부터 예의바르고 마을의 기강을 세워 상부상조 한다는 뜻으로 장예(長禮)라 불림. | |
잠두 (蠶頭) |
풍수지리상 마을 동쪽산의 지세(地勢)가 잠두지형국(蠶豆地形局) 이라 하여 식량이 풍부하여 마을이 번창한다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뉘이기”또는 잠두(蠶豆)라 불림 | |
봉암리 (鳳岩里) |
신정 (新丁) |
당초에는 성(城)밖에 위치한다하여 성외촌(成外村)이라 하였고 그후 산성촌(散姓村)이 형성되자 이곳에 정자(亭子)가 있어 신정(新亭)이라 칭하다가 마을 지형이 정(丁)자형으로 생겨 신정(新丁)이라 개칭함. |
북촌 (北村) |
녹동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서 조선시대에 녹도만호진성 북문의 중심지에 있어 예부터 북촌(北村)이라 함. | |
평화 (坪禾) |
녹동구항의 중심에 위치한 마을로 옛 녹도(廘島) 만호가 집무했던 동헌이 자리한 곳으로 만호진성(쌍충산으로부터 매골산을 이은 성곽)의 중심에 위치하여 성안(城內)마을이라 칭하여 오다 일제 때에 경호(鏡湖)마을 광복 후 평화(坪禾)마을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만호성 동문에는 수령 300년 이상이 된 나무가 있음. | |
녹동1구 (鹿洞一區) |
옛 지명은 녹동, 사슴의 형상으로 예전에는 섬으로 표기 되어 있었음. 사슴의 후 복부(남쪽)에 해당된 위치에 마을을 자리 잡아 1979년까지 남촌이라 칭하다가 1980년 고흥군 조례 제672호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녹동1구라 불림. | |
녹동2구 (鹿洞二區) |
녹동1구와 같이 1979년까지는 녹도만호진성내에 있었던 마을이며 현재 녹동1,2,3구가 통합 당시 남촌이라 불려왔으나 1980년 군조례에 의거 리동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당시 재생촌과 남촌 동남부지역 일부가 분동 녹동2구로 분리되어 녹동2구라 불림. | |
녹동3구 (鹿洞三區) |
녹동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서 한때 녹미라 부르다가 지형이 사슴머리에 해당되므로 녹두라 하였는데 조선초기부터 조선조말기까지 성안에 있는 마을이었으며 1980년 행정구역 변경 시 녹동과 남촌으로 분구되었으며 그 후 고흥군 조례 제672호 성내의 고유소재지명을 따서 녹동3구라 불림. | |
녹동5구 (鹿洞五區) |
성안의 마을로서 남촌리와 신정리에 속해 오다가 1980년 1월 20일 고흥군 조례 672호로 공포시행 된 분구에 따라 남촌2구라 부르다가 녹동의 고유소재지명을 살리기 위해 녹동5구라 개칭하였으며 풍수지리상 사슴꼬리에 해당됨 | |
녹동6구 (鹿洞六區) |
녹동의 중심지역구에 위치한 마을로서 녹도만호진성 남문밖에 있는 선착장에 해당된 곳인데 1980년 1월 20일 고흥군 조례 672호로 공포 시행된 분구에 따라 남촌삼구로 불러 오다가 녹동6구로 개칭하여 함. | |
봉서 (鳳棲) |
1930년 봉서를 소봉(小鳳)으로 개명하였으나 1983년 주민회의에서 원래 비봉산의 줄기에 위치한 마을로서 봉황새의 날개 밑에 해당되고 봉황새의 품안에 서식할 곳이라 하여 소봉명을 다시 봉서로 개칭하였음. | |
대봉 (大鳳) |
조선조말기까지 마을 뒤에 누정(樓亭)과 서당이 있어 마을 이름을 봉서라 불러오다가 그중 큰 마을 이므로 대봉이라 개칭함. | |
동봉 (東鳳) |
비구산(현 비봉산) 줄기인 망산 밑에 마을이 형성되어 오다가 김복봉 입향조가 입향한 후 갓바구(笠岩)라 불리어 졌음. 그 후 봉암이라 불리어지다가 1945년 해방 이후 마을이 대촌(大村)으로 형성되자 중촌(中村), 매동(梅洞)으로 분할되어 동봉이라 함. | |
중촌 (中村) |
경주김씨 대촌(大村)을 형성한 봉암리는 리동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봉(東鳳), 중촌(中村), 봉산(鳳山), 매동(梅洞)으로 분할되었는데 4개 마을 중 가장 중심지에 위치하여 중촌이라 함. | |
봉산 (鳳山) |
마을 앞산에 골짜기가 있어 산골이라는데 연유하여 산동(山洞)이라 불리어 오다가 비봉산 봉황새가 이 산을 넘어 날았다는 뜻으로 봉산(鳳山)이라 함 | |
매동 (梅洞) |
옛날 이곳에 매화(梅花)나무가 많아 마을이 매화꽃으로 덮인다는 뜻으로 매동(梅洞)이라 함. | |
상화도 (上花島) |
경주김씨가 처음 입기설촌(入基設村) 할 때 두 개의 섬이 수목과 꽃이 만발하여 마치 꽃봉오리와 같다하여 화도(花島)라 불렀으며 위에 있는 섬이므로 상화도(上花島) 또는 “윗꼬이섬”이라 하였다.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도양읍으로 편입되어 도양읍 봉암리 상화도라 불림. | |
하화도 (下花島) |
최씨가 입기설촌(入基設村)하여 화섬이라 불렀고 꽃봉오리와 같은 두 개의 섬중 아래에 있다하여 “아랫꼬이섬” 또는 하화도(下花島)라 불렀으나 197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하도로 분리, 도양읍 봉암리 하화도라 불림. | |
득량리 (得良里) |
선창 (船倉) |
조선조시대에 장흥부에 속한 수장으로서 원래 완도군 득량면 득량리 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따라 도양읍에 편입되었고 마을 앞에 선창이 있어 마을 이름을 선창이라 칭함. |
관청 (官聽) |
옛 장흥부에 수장 또는 도양 순전일부를 관리 하던 관청이 있었고 그 후 완도군 득량면 관청리로 편입되자 이곳에 득량면사무소를 설치 개청하면서 마을 명을 관청이라 불렀으며 1914년 다시 도양읍으로 편입된 후 개정 없이 관청이라 부름. | |
소록리 (小鹿里) |
소록 (小鹿) |
본래 금산면에 속했다가 행정구역 개편에 도양읍으로 편입되었고 1974년 10월 19일 소록도출장소가 설치된 이래 현재까지 소록도라 불림. |
시산리 (詩山里) |
시산 (矢山) |
원래 돌산군 봉래면의 지역이었으며 마을 이름의 변천을 볼 때 示山, 詩山, 時山, 矢山으로 표기 되었고 시산마을 앞에 송도(松島)란 섬이 있어 이곳에서 바라보면 마을 지형이 마치 활(弓)모양으로 생겼으며 간조시(干潮時)에 보면 화살 모양의 돌무지가 마을을 감싸고 있다하여 시산(矢山)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1963년 11월 1일 풍양면에 편입된 후 1983년에 다시 도양읍으로 편입 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