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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항공중심도시 고흥

우주항공중심도시 고흥

인구 10만 비전

도화면

연혁

  • 고려초기 : 타주부곡
  • 고려 명종 27년 : 도화현
  • 조선 세종 23년 : 흥양현
  • 조선 고종 26년 : 흥양군 도화면
  • 1914년 구역개편 : 고흥군 도화면

지명유래

도화면 지명유래-가화리(加禾里),구암리(九岩里),사덕리(四德里),발포리(鉢浦里),덕중리(德中里),봉산리(鳳山里),당오리(堂烏里),신호리(新虎里),봉룡리(鳳龍里),지죽리(支竹里)
가화리
(加禾里)
지등
(池嶝)
도화면의 서쪽 끝에 위치한 마을로서 마을 중심지에 큰 못이 있어 이 ‘못등’에 거미줄처럼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못등”이라 불리어 오다가 195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등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이목동
(梨木洞)
손씨가 입향 설촌할 당시 이곳에 배나무가 많고 배꽃이 만발하였다 하여 원래의 지명은 배나무골로 부르다가 1956년 가화리에서 분동될 때 한자를 음차하여 이목동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원도동
(園桃洞)
유주산 북쪽 골짜기에 위치하여 복숭아나무가 많으므로 아담한 정원처럼 생겼다하여 1680년 지방행정구역 개편 시 복숭아 도자를 합하여 원도동이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화옥
(禾玉)
앞면은 바다로 싸여 있으며 본 마을의 촌명은 당시 “꾸둘리”라 불리어 왔는데 마을이 하도 빈곤함으로 이웃 원도동 마을에서 매년 백미를 구입하여 생활해 오던 중 꾸둘리는 벼가 구슬이라는 옛 어른들의 뜻을 받들어 벼 화자 구슬 옥자를 합하여 화옥이라 함.
황촌
(黃村)
본시 400여년전 장수황씨가 설촌하면서 황촌이라 이름 하였으며, 1956년 리동 행정구역 개편 시 가화리에서 단일부락으로 분동된 이래 변화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음.
대통
(大通)
옛날 이 마을을 지나던 풍수가 마을 앞에 바다가 있어 이곳이 큰 길로 통할 것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대통이라 칭하였으며 1956년 분동된 이후에도 변함없이 대통이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여의천
(如意川)
옛날 지금의 가화천을 여의천이라 불렀는데 천등산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가화리를 걸쳐 여자만으로 흐르는 강으로서 이 하천이 여의천 마을의 중앙으로 흐르고 있어 가화천의 옛 이름을 따서 여의천이라 부름.
구암리
(九岩里)
사동
(巳洞)
당초 설촌할무렵 마을 뒷산 유주산 중턱에 절이 있어 사동이라고 부르다가폐사된 후 뒷산의 지형이 뱀과 같이 생겼다하여 마을명을 사동으로 개칭현재에 이르고 있음.
하동
(下洞)
본래 흥양군 도화면 구암리에 속한 마을로서 마을위에 거북이처럼 생긴 큰바위가 있어 구암이라고 하였다가 뒤에 아홉 구자로 고쳐 구암이라 칭했는데 1956년 리동 행정구역 개편시 구암리 아래쪽에 위치했다 하여 하동이라칭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음.
상동
(上洞)
1956년 리동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암리에서 분동돈 상동마을은 구암리윗쪽에 위치한다 하여 상동이라고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단장
(丹粧)
마을 뒷산이 풍수지리상 옥녀 장대 형국임으로 마을명을 옥녀가 내려와 화장을 한다하여 단장이라 부르며 분동된 후 변개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음.
내촌
(內村)
원래 단장마을이었으나 마을의 골짜기에 위치한다 하여 안단장이라 부르다가 리동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촌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사덕리
(四德里)
덕흥
(德興)
당마을 지형은 오룡 쟁주 형국이며 마을의 터는 포구라 하여 촌락 형성당시부터 선소라 불리어 왔으나 그후 수덕산 서쪽 기슭 해안에 이룩된 마을로크게 일어난다는 뜻에서 수덕산의 덕자를 따서 고종 25년 덕흥이라 칭함.
덕촌
(德村)
마을 앞에 방죽이 있어 방죽몰이라 부르다가 지방행정구역 개편시 수덕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곳이라 하여 수덕의 덕자를 따서 덕촌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덕방
(德坊)
수덕산 기슭에 위치한 마을로 이조말 새몰이라 부르다가 마을 앞 제방으로마을을 막아 농토를 조성하여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수덕산의 덕자와제방의 방자를 따서 덕방이라 칭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음.
수덕
(修德)
마을 앞산 수덕산을 상징하여 덕과 수양을 닦으라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수덕이라 불렀으며 또 마을이 들 가운데 있어 사방이 들판으로 감싸고 있으므로 벼가 흔한 마을이라 하여1914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화덕이라 부르다 1996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으로 다시 수덕이라 함.
하도
(鰕島)
마을 지형이 새우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하도라고 이름하였으며, 사덕리에속한 마을이었으나 1956년 리동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도마을로 독립,현재에 이르고 있음.
발포리
(鉢浦里)
발포
(鉢浦)
수군만호진영으로 발포라 부르다가 임·정양난 이후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 발포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발이라 부르다 1996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시 발포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이충무공이 머무신 곳으로 역사적 유서깊은 문화유적지가 많을뿐 아니라 굴강, 왜가리도래지와발포 해수욕장, 활개바위 등 관광자원이 풍부한 곳임.
덕중리
(德中里)
덕산
(德山)
1914년 덕산과 중산을 합하여 덕중리로 되었는데 수덕산을 서쪽에 바라보고 그 덕을 추모한다는 뜻에서 풍수의 말에 따라 덕산이라 부르며 중산마을의 안쪽에 위치함으로 내동 또는 안골이라 하였으며 분동되면서 덕산이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중산
(中山)
마을 앞산의 산형이 개어미의 젖줄에 해당된다 하여 육금이라 불리어 오다가 일정시대에 마을 양쪽에 산이 있고 산 사이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중산이라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음.
봉산리
(鳳山里)
봉산
(鳳山)
이조초기에 소지명을 포천 또는 포내라고 하였으나 마을이 비봉산 줄기에위치하고 있으며 산새가 봉황같다고 하여 1836년 현종때 조양선생이 마을이름을 봉산으로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음.
당오리
(堂烏里)
당곤
(堂昆)
마을 동쪽에 ‘섭밭골’이란 마을이 있어 마을 뒷산에 당산터를 마련하고 당산제를 지냈으므로 당곤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마을에 동백정, 고사정이 있고 독립지사 기산도의 유적지가 있다. 당오리에 속한 당곤마을은 1956년 분동 단일마을로 형성하여 변함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음.
신오치
(新烏峙)
면 소재지에 정기시장(5일)이 생긴 이후 동오치 1반에 속하였으나 1963년 10월 당오천(도화천)을 중심으로 동오치에서 신오치로 분동된 후 1981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새로 생긴 오치라 하여 신오치로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음.
동오치
(東烏峙)
조선말기인 1885년(고종22) 지방제도 개편에 의하여 동오치라 불렀으며 마을 뒷산의 지형이 까마귀와 같다하여 오치라 하였는데 1934년(일제강점기)에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동오치로 분동한 후 1963년 리동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동오치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오치
(烏峙)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오치로 칭해왔으나 1934년 서쪽에 위치한다 하여 서오치라 불렀음. 또 맨 처음 생긴 마을로서 속칭 “까박제돈부골”이라 칭했으나 1963년 리동 행정구역 개편으로 단일 독립마을로 되었으며 2007년 오치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신호리
(新虎里)
동백
(冬栢)
조선초기(세종 23년)까지 도화현의 현청이 있던 곳으로 옛날 풍수가 마을을 지나다가 동백이 무성함을 보고 동백마을이라 이름 하여 전한다고 하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 신호리에 속하였으며 다시 1934년에 분리되었다가 1963년에 행정 단일마을로 독립, 현재에 이르고 있음.
지정
(池亭)
고려말기 도화현의 향교가 있던 곳으로 한때는 교촌이라 부르다가 마을 가운데에 천연의 정자와 못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름다움을 뜻하여 1970년부터 마을 이름을 지정이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신기
(新基)
신호리에서 분동된 마을로서 조선중기에 음성으로부터 새로 터를 잡아 이룩된 마을이라 하여 ‘새터’ 또는 신기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원산
(元山)
원래는 마을 산이 둥글다하여 원산이라 부르다가 옛 삼국시대 때 경마장이 있었다고 전하며 1914년 전부터 리동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산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호덕
(虎德)
풍수지리상 옛 도화현의 좌측에 청룡의 상이 있고 우측에 백호의 상이 있어 마을 터로 최적지라 하여 호랑이의 덕을 본다는 뜻에서 호덕으로 이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봉룡리
(鳳龍里)
봉동
(鳳東)
비봉산 기슭의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서 옛날 봉황새 두 마리가 마을에 날아와 집을 짓고 알을 품고 있었다 하여 봉서동이라고 부르다가 서쪽에 있는 봉서마을과 분동되면서 서자를 빼고 봉동마을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고당
(姑堂)
원래 이곳 지소명을 네메할미당이라 하였는데 1894년 당시 이곳에 동학군을 은신시켜 왜군의 눈을 보이지 않게 한 당할머니가 있어 할미당을 시어미 고자와 집 당자를 합하여 마을이름을 고당이라 함.
봉서
(鳳西)
비봉산 서쪽에 위치한다 하여 1956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분동되면서 봉서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황산
(黃山)
원래 지소명은 “붉은덕”이라 불렀으며 흙이 빨간 황토흙이어서 우주매라고도 하였으나 붉은덕의 한자를 훈차하여 같은 뜻의 황산이라 칭하여 1956년 리동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분동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음.
청룡
(靑龍)
마을 뒤에 망덕산이 폭넓게 자리 잡고 좌우로 산맥이 청룡 백호로 뻗어 있어 마을의 지형이 풍수지리상 도화현의 청룡산에 해당하여 마을 명을 청룡이라 칭하였으며 1956년 리동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분동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음.
지죽리
(支竹里)
지호
(支滸)
섬 안에 있는 천연호수가에 지초라는 풀이 많아 소가 이풀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와우형이라 하여 풀이름 지자와 호수 호자를 따서 지호도라 불리어 왔으며 지죽도와 죽도, 소금섬 등의 여러 섬으로 형성되었으므로 지죽도와 죽도의 머리자를 따서 지죽도라 하였음.
죽도
(竹島)
신호대가 섬을 둘러싸고 있어 대섬이라 부르다가 봉황새가 죽실을 따 먹으려고 이 섬에 날아왔다 하여 길조란 뜻으로 대 죽자와 섬 도자를 따서 죽도라 이름 하였으며 196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도화면으로 편입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음.
  • 관리부서

    도화면

  • 연락처

    061-830-6538

  • 최종수정일

    2020-02-2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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